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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폐역사

고려시대 주전(鑄錢)에 관한 최초의 기록으로는 성종(成宗) 15년인 996년에 주철전(鑄鐵錢)과 방원적용(方圓適用)이 있으나 실제 전문(錢文)에 대하여는 알수없다. 1910년 개성부근의 고려고분에서 무문철전(無文鐵錢)과 건원중보(乾元重寶)철전이 발견되었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무문철전은 방공원형의 형태을 갖추었지만 조잡한 타조전(打造錢)으로 보아 관조전이라 여기기 어렵지만 주조전인 건원중보는(背 '東國'字) 관주전이라 여겨진다.
건원중보(乾元重寶)는 중국의 당숙종 건원 2년(759)부터 주조된 것인데, 이 전문을 모방하니 중국전과 고려전의 구별이 어려운 관계로 뒷면의 '東國'자를 앞면으로 내어 '東國重寶'를 만들었지 않았나 추즉되어진다. 이는 거자(巨字) 동국중보의 서체와 모양이 거의 건원중보 背'東國' 錢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숙종연간에 이르기까지 동국통보(東國通寶), 해동원보(海東元寶), 해동중보(海東重寶), 해동통보(海東通寶), 삼한중보(三韓重寶), 삼한통보(三韓通寶) 등 전명(錢名)별로만 8종이 주조되었다.

1. 조선통보(朝鮮通寶)
조선통보는 世宗 5년(1423)부터 仁宗朝간에 걸쳐 주조된 것으로 알려져있는 해서(楷書) 조선통보(朝鮮通寶)와 팔분서(八分書) 조선통보(朝鮮通寶)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모두가 소형전이며 대형전으로는 배면(背面)에 '호일전'(戶一錢)이라 새겨진 것과 무배자(無背字)인 해서전(楷書錢)과 배면에 '十'자가 새겨진 팔분서전(八分書錢)이 있는데, 이들은 시주화(試鑄貨)로 알려져있다. 그리고 조선통보 시주화에는 고종(高宗) 18년(1881년)에 소형전이 있는바 이것은 상평통보(常平通寶)의 모전(母錢)과 유사하다.
2. 상평통보(常平通寶)
조선시대 중기에 접어들면서 주조. 발행된 상평통보는 기록으로 보아도 우리 나라 화폐사상 최장기간 유통된 화폐였다. 둥근 모양으로 가운데 구멍이 뚫린 이 돈은 전면에 상평통보(常平通寶)라 쓰였으며 배면(背面)에는 주전소의 약호,숫자,천자문,부호의 표시등 다양하게 변화하는데, 이 변화에 따라 세분하면 무려 3,000여종이 된다.

근대의 화폐는 개항 이후 대동은전(대동은전)이 발행된 1882년부터 일제의 강점(1910~1045) 이전까지이다. 근대화폐 제도의 수용은 조선 말기 당백전(당백전) 등의 통용으로 화폐제도가 어지러워지자 체제와 품질이 통일되고 운반이 편리하며 가치가 안정된 근대 금?은 본위 화폐제도를 도입, 실시하여 선진 여러 나라와 통상 거래에서 생겨나는 장애와 경제적 손실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책은 열강의 이권에 따라 변화되었다. 근대화폐의 제조는 대동은 전부터 시작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조폐기관인 전환국을 설치하여 1891년에 은본위 화폐제도를 공포하고인천 전환국에서 은전(은전)을 비롯한 백동전(백동전), 적동전(적동전), 황동전(황동전) 등 5종의 근대 화폐를 만들었다.

한일합병이후 1년만인 1911년에 일제는 조선은행법을 공포하여 시행함으로써 이전에 있었던 (구)한국은행을 조선은행으로 바뀌었다. 이후에 일제시대에 발행되었던 화폐는 조선은행권이었으며, 해방 잔까지 19종의 화폐가 만들어졌다.
조선은행권은 1914년에 대흑천상(대흑천상)을 초상으로 하는 백원권이 발행되었으며, 1915년에는 일원권, 십원권을 만들었다. 그 뒤 조선은행권은 계속 발행되어 만주지방과 중일전쟁 때에는 중국 본토에까지 유통되었으며, 그 발행고는 (구) 한국은행이 제일은행으로부터 인계받은 발행고 1180여 만원에서 광복 때에는 49억원으로 증가하였다.
조선은행권은 일제 말기에 전쟁의 영향으로 일본 내각인쇄국에서 발행되었던 것이 한국 내에서 발행하게 되었으며, 많은 은행권의 필요로 고액의 천원권(1944년)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천원권은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로 발행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1년부터 화폐발행이 급격히 늘어나 해방 직후의 경제를 더욱 악화시키게 되었다.

1945년 광복 뒤 남한에서는 미 군정이 실시되었으나 그해 11월「미군정법령」 제21호에 의해「조선은행법」이 존속되어 조선은행권은 계속 유통되었다.
한편 통화 발행고는 광복 직후 미 군정의 거액 지출과 전후 경제 질서의 혼란 등으로 인해 급격하게 팽창되었다. 급격한 통화 팽창에 따라 조선은행권의 중심권의 종류도 저액권에서 고액권인 100원권으로 이행되었다. 은행권은 1945년 9월 이후부터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서 인쇄, 발행되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9월에 을 100원권이 발행되었고 이어 을 1원권과 갑 10원권, 을 5원권, 을 10원권, 병 10원권 그리고 병100원권 등이 1946년 5월까지 8개월 동안에 속속 발행되었다. 1946년 이후에도 정 100원권과 정 10원권이 발행되었으며 뒤이어 이면의 색채가 변경된 무 100원권이 발행되었다.

1948년 8월 정부 수립 직후에는 당시 유일한 법화인 조선은행권이 사실상 무제한으로 발행되었고 1942년 이후에는 은행권 발행에 있어서 '최고 발행액 제한 제도'가 운용되었다. 광복 뒤에도 바로 중앙은행법이 제정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법제면에서는 '최고 발행액 제한 제도'가 계속적으로 적용되었으나 정치.경제적 혼란으로 인해 사실상 유명무실하였다.
전쟁이 일어나자 전시 자금 수요에 따른 현금 부족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은행은 급히 은행권을 새로 발행하여 이미 발행된 조선은행권과 함께 통용시켰다.
한국은행은 갑작스러운 6.25동란으로 은행에 남아 있던 조선은행권을 미처 폐기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정부는 적성통화의 유통을 막아 적군의 경제 교란 행위를 봉쇄하기 위해 1950년 8월 28일「대통령 긴급명령」제10호로 '조선은행권의 유통 및 교환에 관한 건'을 공포하여 '제1차 통화조치'를 취하였다.
휴전협정 체결 직전인 1953년 2월에는 재정, 금융 및 산업 활동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통령 긴급명령」제13호에 의해 '제2차 통화조치'를 취하였다. 따라서 모든 원화의 유통을 금지시키고 모든 거래와 원화 표시의 금전 채무는 100대 1의 비율로 절하시켜 그 단위를 새로운 '환'으로 개칭하게 되었다.
또 '제2차 긴급 통화조치'로 화폐 단위가 '원'에서 '환'으로 바뀌었고 새로 발행된 신 한국은행권 1환, 5환, 10환, 100환 등 5종의 화폐가 통용되었다.
1961년 5.16쿠테타 이후 1962년 6월 10일에는 '제3차 통화조치'를 단행하였다. 이 조치는 구 정권의 부패에 편승하거나 부정 축재로 축적되었던 자금을 산업 자금화하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투자 재원을 동원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통화 증발에 따라 예상되던 악성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제2차 통화조치'와 함께 통화 개혁의 성격을 가지는 이 조치는 구환화의 유통과 거래를 금지시켰고, 화폐 가치의 10분의 1 절하와 함께 6월 17일까지 모든 구권과 지급 지시를 금융 기관에 예입하게 하고 화폐 단위를 '원'으로 변경하도록 하였다.